Q) ‘Director as DJ’ 에서 한국의 과거 영상을 사용하게 된 모티브는 어떻게 얻었는지

아트센터 나비의 큐레이터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국의 아카이브 영상들과 샘플링을 연계시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초기 영화산업은 상당히 활발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잘 될 거라고 예상도 했고요. 특히 ‘자유부인’에는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클럽의 모습이 등장하여 당시 상당히 쇼킹한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었죠.

Q) 자유부인이 샘플링 되자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히 재미있었는데요, 예상하고 있던 호응이었나요

어떤 영화이던 지금과는 다른 시간대, 언어, 옷스타일 등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동시에 매우 재밌죠. 한국말은 못하지만 아마 좋아할 거라고 예상 했었어요.

Q) 사람들은 당신을 작가, 비평가, DJ 등의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누구냐. 난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입니다. 주변의 상황을 귀담아 듣고, 리서치를 하고. 언제나 우리가 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며 어떻게 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지’ 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왜냐하면 매우 이상하면서 아름답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서 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질문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죠.

Q) DJ로써 전세계의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을 하셨는데 그 중 가장 마음이 맞았던 작가가 있다면

Sonic Youth의 기타리스트도 있고, 힙합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작가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정말 좋아합니다. 아직 같이 일한적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군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한 명이에요.

Q) 한국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할 계획은

퍼포머 비엔날레 당시 백남준씨의 리믹스 프로젝트에 참여한적이 있었고, 한국의 프로듀서들과 협업할 계획도 있습니다.

Q) DMZ를 다녀오셨는데 냉전시대의 마지막 잔재를 목격한 기분은 어떤가요

내 친구가 평양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아티스트들을 초대할 예정이라 아마 그곳에 가게 되겠군요. DMZ나 판문점에 대해 사람들은 들어보기는 하지만 직접 그곳에 가서 수백만 개의 지뢰를 보게 된다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식민주의의 슬픈단면 중 하나가 사람들이 자기자신들의 전쟁이 아닌 남의 전쟁을 치른다는 점에 있죠. 공산중국이나 북한, 베트남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일 같은 지도자는 좀더 눈을 뜰 필요가 있어요.

Q) P.arty. 2007 는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이벤트들은 디지털 문화에 대한 서로 틀린 구성과 접근간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또 이들과 대화하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P.art.y 2007은 다른 스타일간의 대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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